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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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대설은 소리 없이 승화 (시)
그해 대설은 소리 없이 승화 겨울은 없던 거 같습니다 어둠이 물밀려오듯이 성급하게 다가올 때 당신은 미처 눈을 뜨지도 못합니다 먹먹하게 멈춰있던 겨울의 당신은 지금 천천히 미지근합니다 초봄 햇볕 가슴팍에 안긴 마지막 폭설은 길을 잃고 조금씩 하늘로 새어나가 번집니다 점점 더 미지근해지는 눈은 녹아 흐르는 것을 모르고 마지막까지 웅크려 있다가 하늘로 서서히 사라집니다 부드럽게 없어집니다 날아가는 반짝반짝한 눈가루를 본 사람이 없습니다 겨울은 아무래도 없던 거 같습니다 다음해 겨울을 기다립니다
2020.06.26 -
인어공주 (시)
인어공주 머리를 거꾸로 하면 겹쳐진 음악이 얼룩덜룩 흐르고 발톱을 손톱깎이로 쪼개면 새들이 날고 기타는 항상 습기가 차서 소리가 작은 것 같아서 표류하는 섬을 베개 삼아 이불 바다를 덮었다 손가락이 선율을 따라다니면서 피아노를 친다 풀어지고 묶이길 반복하는 건반의 소리 높은음자리표를 계속 털어보며 도약한다 머리카락은 탈색 후 샛노란 색이 되고 염색을 몇 번 거쳐 연두색과 초록색과 손톱 가루가 묻어난 영롱한 바다색이 물든다 해초처럼 염색하려고 한건 아직 생택쥐페리의 죽음을 믿지 않아서 였다 화음이 마구잡이로 올라가면 목소리는 따라가지 못하고 거품이 되어 머리카락을 아주 부드럽게 만들었다 우쿨렐레는 바다 수면쯤에 잠수해있고 오래전부터 인어공주의 지느러미는 파도를 탁 치며 다른 곳으로 물들어간다 물속에서 겨우..
2020.06.26